예린이의 일기

초등학교 1학년, 마음이 깊어진 하루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어제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지 궁금해서였다.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요즘 들어 느낀다. 똑같이 학교에 가고, 같은 교실에 앉고, 같은 책을 펴도 내 마음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아마 내가 자라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는 길에 나는 내 발걸음을 유심히 보았다. 어제와 같은 길인데도 오늘은 길가의 나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매일 자라지만, 하루 만에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도 그런 것 같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분명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자랐다.
첫 수업은 국어였다. 오늘은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연습을 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다시 말해 주는 활동이었다. 내 짝은 어제 숙제를 하다 어려웠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다시 말해 주었다. 선생님은 “잘 들은 사람만이 잘 말할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고, 상대방의 표정과 말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들었을 때, 친구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두 번째 시간은 과학이었다. 오늘은 ‘피부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배웠다. 피부는 단순히 겉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운지 추운지 느끼게 해 주고, 세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주며, 상처가 나면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책 속의 그림을 보며 오래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니, 피부는 정말 부지런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질문을 하나 더 하셨다. “만약 피부가 아프면 어떻게 될까요?” 친구들은 간지럽다, 따갑다,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피부가 아프면 마음도 같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누군가의 몸이 아프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 전체가 힘들어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작은 다툼이 있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얼굴이 굳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그냥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두 친구에게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친구들은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시 웃으며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놓였다. 완벽하게 해결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는 오늘 배운 피부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뜨거운 국을 먹을 때 조심하게 되었고, 손을 씻을 때도 더 꼼꼼히 씻게 되었다. 배운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게 공부의 진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체육 시간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다가 숨이 차서 잠시 멈췄다. 예전에는 숨이 차면 바로 포기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조금 쉬었다가 다시 뛰었다.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몸도 마음처럼 연습하면 조금씩 강해진다는 걸 느꼈다.
하교 후 집에 와서 숙제를 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 연필을 내려놓고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문제를 읽어 보았다. 오늘 하루 동안 배운 것들이 떠올랐다. 잘 듣기, 천천히 보기, 포기하지 않기. 문제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전보다 덜 무섭게 느껴졌다. 결국 엄마의 도움을 조금 받아 해결했다. 혼자서 못 풀었다고 부끄럽지는 않았다. 도움을 받는 것도 배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씻은 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피부는 말이 없지만, 하루 종일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이 피부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피부를 보고 원인을 찾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사람. 단순히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불편한 하루를 조금 덜어주는 사람 말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의 교훈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 나는 잘 들었고, 잘 보았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과 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이런 날들이 쌓이면, 나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 어려운 공부와 더 복잡한 마음들을 만나겠지만, 오늘 배운 태도는 오래 남을 것 같다.
성장은 키가 크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라는 걸 오늘의 예린이는 배웠다. 그리고 그 성장은 아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도 예린이는 그렇게 한 걸음 더,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