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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 의사가 되기까지, 삶의 결을 배우다

꿀팁을 모아드립니다 2025. 12. 12. 19:27

예린이의 하루 일기 같은 동화

피부과 의사가 되기까지, 삶의 결을 배우다

예린이는 어느새 ‘학생’이라는 이름보다 ‘의사’라는 호칭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예린이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더 조심스럽게, 더 성실하게 살아가게 했다.
사람의 몸을 다룬다는 것은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함께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예린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린이가 처음으로 단독 진료를 맡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교과서로 배운 지식은 충분했지만,
책 속에는 사람의 표정과 침묵까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린이는 출근길에 자연스럽게 손을 씻었다.
습관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몸에 밴 행동이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첫 환자를 맞이했을 때
예린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환자는 얼굴에 깊은 흉터가 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말수가 적었고, 의자에 앉는 자세도 조심스러웠다.

예린이는 바로 차트를 보지 않았다.
먼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물었다.
“어디가 가장 불편하신가요.”
그 질문 하나에 환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그 미세한 변화는
수치나 기록으로 남지 않지만
예린이는 놓치지 않았다.

진료가 끝난 뒤,
환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은 이상하게 덜 부끄럽네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예린이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보건실에서 친구의 무릎을 눌러 주던 작은 손,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점심시간, 예린이는 혼자 병원 옥상에 올랐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햇빛은 여전히 피부 위로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예린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피부가 느끼는 온기처럼
마음도 잠깐 쉬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시간이었다.

그날 저녁, 예린이는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종이가 누렇게 변한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였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늘 손을 들었다.
떨렸지만 말해서 좋았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예린이는 조용히 웃었다.
그 손 들던 아이가
지금은 누군가의 상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예린이는 진료를 거듭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피부병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은 사람들,
말 대신 침묵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예린이는 모든 환자를 완벽하게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마주할 수는 있다는 것도 배웠다.

어느 날, 어린 아이 하나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아토피 때문에 밤마다 긁느라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지쳐 보였고,
아이의 눈은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예린이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너 잘못한 거 아니야.”
그 말에 아이는 처음으로 예린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날 집에 돌아온 예린이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치료는 약으로 시작하지만,
안심은 말에서 시작된다.’

예린이는 여전히 매일 일기를 쓴다.
화려한 성공담은 적지 않는다.
대신 오늘 만난 얼굴,
오늘 느낀 망설임,
오늘의 부족함을 그대로 적는다.

그 기록들은 예린이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다음 날을 더 나은 마음으로 맞이하게 했다.

가끔 예린이는
만약 다른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등굣길의 벚꽃,
중학교 시절의 눈물,
고등학교의 밤공기,
대학교의 새 노트 첫 페이지까지.

그 모든 장면이
지금의 자신을 정확히 여기로 데려왔다는 걸
예린이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끝이 있는 동화가 아니다.
예린이의 하루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하루하루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동화의 또 하나의 교훈은 이것이다.
사람을 돕는 일은
능력 이전에 태도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태도는
어린 시절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린이는 오늘도
진료실 불을 끄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그리고 내일도
같은 마음으로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그렇게 예린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누군가의 피부와 마음을 함께 살피는 사람으로.